[독후감]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조직을 찾다가 다양성과 포용이 가득한 조직을 꿈꾸게 되었다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독후감입니다.
배달음식을 먹을 때, 간혹 A를 주문한 줄 알았는데 B가 도착했고, 의외로 B가 맛있어서 만족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책이 그랬어요.
사내 책모임에서 추천해 준 분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으며 조직 차원에 도입하는 내용이 궁금해졌고, 그래서 이 책을 찾았다고 했어요. 저도 당연히 그런 내용을 기대했고요. 그런데 1장을 읽으며 갸웃하게 됐어요. ‘다정함’과 상관 없이,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이를 줄여 DEI라고 표현해요) 조직 내에 전파하는 방법과 사례를 다루더라고요. 다행인 건, 제가 마침 다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오히려 재미있었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으며 제게 자극이 됐던 몇 가지 내용을 적어 봅니다.
다양성은 단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비즈니스의 문제다
스타트업에서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은 줄은 알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들 답합니다. 때가 아닌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비즈니스’죠. 그런데 다양성 덕에 비즈니스가 성장한다면 어떨까요?
직원 이직률 감소
직원이 오래 일할수록 회사에는 이득이 됩니다. 일단 채용 과정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요. 오래 일한 직원은 업무 맥락을 잘 알고 있으니 업무를 빨리 처리할 수 있죠. 그래서 ‘이직률’은 회사의 건강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채용에 드는 비용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또한 직원의 역량이 높아지고 관리 직급으로 승진하는 사람일수록 회사에는 더욱 이익이 되는데요. 반대로 관리 직급으로 승진하는 비율이 낮다면, 그만큼 회사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는 55%를 여성으로 채용하지만 12~14년이 흐르고 나면 파트너급에는 여성이 25%뿐입니다. 투자 대비 수익이 적지요.
- 제니퍼 와인, 모스 애덤스의 인사 책임자, 131쪽
채용 대상자의 지원 증가
구직자가 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구직자의 최대 권리인 회사 선택의 문제에서만큼은 회사가 작아집니다. 이때 사내 다양성은 구직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주요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취업을 하려는 사람이고 회사 X, Y, Z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회사 인력의 인종 분포와 여성 프로그램을 살펴볼 겁니다.
- 크리스 슈미트, 모스 애덤스의 CEO, 139쪽
제품 사용자와의 동일성
회사의 직원 구성을 제품 사용자의 인구 구성에 맞추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제품 사용자를 잘 이해해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려는 전략이죠.
우리는 인구통계와 노동력의 구성 분포를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베이비붐 세대에서 밀레니엄 세대, 포스트 밀레니엄 세대로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인구학적 변화가 이미 노동력에 반영되었고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 마크 어빈, 베스트바이의 Chief Diversity Officer, 214쪽
성과 향상
그래서 다양성을 도입하면 뭐가 좋은데? 라고 묻는다면 조직의 성과에 끼치는 영향이 꽤 크다고 합니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맥킨지, 컨퍼런스 보드, 하버지 비즈니스 리뷰 프레스 등 여러 기업에서 인력 다양성이 높은 회사일수록 비즈니스 실적이 좋다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중략) 조직 다양성이 회사의 수익을 높인다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 제니퍼 와인, 모스 애덤스의 인사 책임자, 145쪽
포용적인 문화에서 혁신의 가능성은 6배나 더 높다. 생각의 다양성은 팀의 혁신을 20% 높이고 위험을 30% 감소시킨다고 한다.
- 269쪽
비즈니스적인 접근에 대한 우려
물론, 다양성에 대해 ‘비즈니스’ 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DEI에서 비즈니스 케이스가 인간성을 지워버리고, 옳은 행동을 또 다른 비즈니스 케이스의 일부로 변질시킨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모두가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직장에서 성공할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어째서 비즈니스 케이스를 들어 설득해야 하느냐는 의문이다. 일면 설득력이 있지만 역사는 도덕적 신념으로서 DEI가 지닌 한계를 여러차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 130쪽
적극적 우대조치의 역할과 DEI 정책으로의 전환
이 책에 따르면 DEI는 현대의 미국 회사들이 점점 관심을 갖는 정책입니다. 그 바탕에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라고 부르는 미국의 법이 있었는데요. 1960년대부터 도입된 이 법은 몇 번의 축소, 확대를 거치다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했지만, 그 정신을 이어가려는 의도로 각 회사들이 DEI 정책을 도입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좀더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적극적 우대조치에 포함되는 법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략) 다만,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는 평등관 침해의 차별행위로 보지 아니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호
의무고용률에 못 미치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상시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제외한다)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매년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부담금을 납부하여야 한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33조 1항
성 차별 문제를 어느정도 극복한 미국의 회사들이 인종이나 소수자를 위한 정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성 차별 문제가 여전히 주요 쟁점인데요. 저 역시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우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계속) 고민 중이다가, 이 책을 읽으며 어느정도는 우대하는 것이 맞다는 쪽으로 기울었어요. (개발자 성비가 2:8이라고 가정했을 때 채용에 여성을 우대하지 않으면 2:8 비율이 지속될 텐데, 이는 개발 생태계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생태계에서 다양성을 일부러라도 들여와야, 다양성 덕에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선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고 이해했어요.)
DEI 도입의 전환점: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2020년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부당한 제압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성별에만 국한됐던 DEI 정책들에 인종과 소수자라는 구성원들도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벌어진 후 구성원들이 겪은 충격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는데요. 그래서 조직에 따라 어떤 조직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고, 해당 인종의 구성원에게 감정 휴가를 주기도 하고, 조직 내 정책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시작합니다.
팀원들에게 감정 휴가를 쓰라고 권고할 수 있는 것, 누가 감정적으로 취약해 제대로 업무를 하지 못한다는 낙인을 찍지 않아도 된 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중략)
CEO가 앞장서서 회사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는 생각에, 직원들은 온전한 자신으로서 진정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안전지대를 실감하는 듯했습니다.
- 레이첼 웨스터필드, 슬랙의 Senior Leader of Global Experience Design, 50 ~ 51쪽
우리나라에서는 보도만 됐지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던 이 사건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세월호 침몰 사고가 떠올랐어요. 세월호 침몰 사고를 바라보던 국민들 대다수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을 겪지 않았을까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바라보던 흑인들처럼요.) 그럼에도 사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바쁘고 책임자를 밝혀내기 바빠서 우리 내면은 잘 돌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여전히 대형 참사가 이어지고 있고, 그때마다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죠.
한편으론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 우대조치를 폐기할 때 이를 찬성했던 부류 중 아시아계 학부모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났어요. 소수 인종 전체를 배려하는 제도 하에서 성적이 높은 소수 인종은 오히려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아이러니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적극적 우대조치의 종말⟩이라는 박상현 님의 연작 블로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료지만 처음 접속하면 글 세 개까지는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능력주의에도 편향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위에서 채용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사실 지금까지는 ‘능력만 보겠다’는 태도로 채용을 진행했었습니다. 능력이야말로 가장 공평한 기준이라는 생각에서요. 그런데 아래 두 구절을 읽고는 제 실수를 알아차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크게 선호하는 ‘유사성 인지 편향’에 빠지곤 한다.
- 142쪽
결국 그 '최고'가 기존의 경험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채용 전략이 편향되었던 거죠.
- 마크 어빈, 베스트바이의 Chief Diversity Officer, 222쪽
이래서 채용 과정에는 최소 두 사람 이상이 각자의 ‘최고’를 놓고 논의해야 하며, 더 좋게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채용 과정에 참여해야 ‘편향’을 피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경영진의 자기 객관화는 불가능한 걸까?
한편 씁쓸한 현실도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DEI와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옵니다. 자기 객관화란 경영진에게도 힘든 일인가봅니다.
- 임원진이 직원이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응답한 직원은 41%뿐이었지만 경영진은 69%가 그렇다고 답했다.
- 직장에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괜찮다고 응답한 직원은 56%뿐이었지만 경영진은 74%가 그렇다고 답했다.
- 회사의 의사결정에서 직원의 의견이 고려된다고 응답한 직원은 47%뿐이었지만 경영진은 75%가 그렇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회사를 포용적이라 보는 비율이 경영진의 경우 대략 4분의 3에 달하지만 근로자의 경우 절반 미만이다.
- 181쪽
어쩌면 경영진이어서 더 힘든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관점 수용에 관한 연구를 보면 권력을 가진 것 자체가 남들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 181쪽
DEI는 목표가 아니다
그럼 DEI가 회사 최대의 목표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DEI란 결국 직장 내 ‘인간성’과 관련된 일이라고 주장해요.
DEI는 직장에서 인간성을 고양하는 일이다.
- 32쪽
직장은 우리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핵심으로 여겨야 한다. DEI는 이 과정의 일부이다.
- 45쪽
이 문장들은 제가 다양성을 넘어 인간성을 지켜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때 인종 차별 문제로 고소를 당했지만 지금은 DEI 정책에 열심인) 베스트바이의 CEO는 ‘채용하지 않은 사람’의 인간성에 대해 이런 멋진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앉을 자리도 없습니다.
- 휴버트 졸리, 베스트바이의 CEO, 227쪽
위험 요소
DEI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임원진이 회사를 떠나거나, 특정 임원 자리에 어울리는 소수자 후보를 찾을 때까지 채용 기간이 길어지는 등의 일도 감내할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려면 회사의 비전과 목표에 DEI가 녹아 있어야한다고 합니다. ‘인간성’이 묻어나는 목표라니, 상상만으로도 들뜨지 않나요?)
몇 달 만에 최고 경영진 열두 명 중 여덟 명이 회사를 떠났다.
- 259쪽
변화를 이끌고자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시작할 때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바로 회사 차원에서의 반응이 필요하다는 점인데요.
설문, 포커스 그룹, 일대일 대화 등 여러 방법으로 직원이 진솔한 경험을 털어놓을 때에는 드러난 문제에 대해 조직이 무언가 행동하리라는 암묵적 약속이 존재한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직원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 81쪽
또, 의사소통이 항상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겠습니다.
비슷한 업무 환경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할 위험이 발생하곤 한다.
(중략)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서로의 차이를 넘어선 존중 어린 대화에 어려움을 느끼며 이를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 211쪽
그래서 아무리 좋은 도덕이더라도, 오해 없이 전달할 방법을 깊이 고민해야합니다.
다 결정된 내용을 가스라이팅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 방법은 무엇일까?
- 주네 사이먼, 슬랙의 Diversity & Inclusion 시니어 매니저, 71쪽
그럼에도 저항은 항상 존재할 겁니다.
제가 소덱소에서 일한 지 이제 18년이 되었습니다. 그 18년 동안 여러 다른 형태의 저항이 늘 있었습니다. 저항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 로히니 아난드, 소덱소의 Chief Diversity Officer, 197쪽
끝으로...
슬랙의 DEI 책임자가 직장 유토피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과 비견되는 우리 시대의 ‘꿈’이 아닐까요?
줌 회의나 대면 회의에서 세계의 인구 구성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얼굴들을 보면 좋겠습니다. 평등을 향한 정서적·지적 추구가 우리 모두의 어깨에 동등하게 놓였으면 합니다. 흑인과 유색인, 그리고 흑인도 유색인도 아닌 직원 모두가 누구든 인간으로 대접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으면 합니다.
채용이 더 공정했으면 합니다. 흑인이나 유색인이 20년 동안 관리직에서 일할 기회가 차단된 상황에서 관리직 경험 20년을 요구하는 관행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억압적인 조직에 묶이지 않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더 지혜롭고 전략적인 대화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늘 리더십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CEO 버터필드의 행동을 보고 싶습니다. CEO의 행동이 그 아랫사람, 다시 그 아랫사람에게 반영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변화의 물결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정말로 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대화로 직원 한 명 한 명이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업무 자체만큼이나 중요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루 근무가 끝날 때면 성과와 결과물을 생각해야 하는 비즈니스입니다. EDI가 우리 회사의 일부가 되기를, 그리하여 편견을 지녔거나 억압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거나 희망하는 이들은 회사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 떠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대답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 레이첼 웨스터필드, 슬랙의 Senior Leader of Global Experience Design, 72 ~ 73쪽
(의도치 않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고 책 모임을 이끌어 준 당근의 Jxxxx와 책 모임에 함께 해 준 동료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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